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M. 79 (문단 편집) == 개발 == SM. 79는 1934년, 사보이아-마르케티 사가 런던-멜버른 레이스(London-Melbourne race)를 위해 S.73을 기반으로 설계한 비행기였다. 당시 경주의 조건에서 승객 8명이 들어가면서가 있기때문에 소형기체로는 불가능하며, 빨라야하고 항속거리가 넉넉해야 했다. 당연하지만 빠르면서 크고 항속거리가 충분할려면 상당히 어려운 요구조건에 속한다.[* 당장 [[B-29]]를 생각해보자. B-29는 폭장, 항속거리, 속력을 전부 가지고 있지만, 그 대가로 고출력엔진을 자주 갈아줘야한다는 ~~정비공들의 애환이 담긴~~ 큰 단점을 가지게 되었다.] 이때 사보이아-마르체티 사는 고출력엔진 2개대신에 저출력엔진 3개를 달아서 출력을 내는 설계를 자주 해보았는데, 이를 이용해서 꽤 만족스러운 속력과 항속거리가 나오게 되었다. 거기에 선진적인 설계를 한 날개와 플랩을 통해 유연한 움직임을 낼 수 있었다. 하지만 런던-멜버른 레이스에서 썩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해서 이대로면 실패작일줄 알았는데, 레이스 초반 [[밀라노]]-[[로마]] 구간을 410km/h로 1시간 10분만에 지나갔다는 점에 이탈리아의 [[높으신 분들]]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어 군용폭격기로 탄생하게 된다.[* 410km/h가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하다면 [[Do 17]] 항목을 참고하자. Do 17이 처음 채택될 때는 무려 고속폭격기라고 불렸다.] 그렇게해서 사보이아-마르케티 사가 SM. 79의 프로토타입을 내보았고 실험비행을 해보았는데, 이탈리아 로마에서 날아서 이탈리아령 [[에리트리아]]까지 12시간만에 도착했다.(중간에 [[이집트]] [[카이로]]에서 연료보충을 좀 했다.) 당시 이탈리아 공군은 이 결과를 아주 긍정적으로 봤고 1916년, 채택되어 기존의 피아트 [[BR.20]] 치코냐(Cicogna)나 자사의 [[SM. 81 피피스트렐로]] 같은 폭격기를 능가 할 수 있다 보고[* 참고로 시코냐나 피피스트렐로 둘다 SM. 79보다 폭장이 많지만, 최고속력이나 비행성능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30년대 초반형 비행기들이었다.] 양산에 들어갔다. 이때, CANT(Cantieri Aeronautici e Navali Triestini - 트리에스테 조선사 및 해양 항공사)사의 3발 폭격기 Z.1007 알시오네(Alcione)와 경쟁했으나 이탈리아 공군은 두 폭격기 전부 우수하다고 보았고, 사용하는 엔진이 다르니(SM. 79는 알파-로메오 엔진, Z. 1007은 피아지오 엔진을 썼다.) 이탈리아의 부족한 공업력으로 적절한 수의 폭격기를 보유하기 위해 둘다 생산하게 된다. 슬프지만 이 비행기들은 영국의 [[호커 허리케인]]처럼 목재-금속 혼합기인데 불구하고 제작속도가 빠르지 못했다(...) 어쨌든 SM. 79 스파르비에로는 총 1,270대 만들어져서 이탈리아 항공기중에 전쟁중 가장 많이 생산된 폭격기가 된다. 이후 사보이아-마르케티 사는 SM. 79의 설계를 매우 마음에 들었는지 민간용 대형버전인 SM. 75를 생산했고 이 SM. 75의 군용 수송기 버전이 SM. 82가 된다. [[제2차 세계대전]]이 발발하자 [[SM. 79]]를 개량한 [[SM. 84]]가 있다. SM. 84는 SM. 79의 후계작으로 CANT 사의 Z. 1007의 후계작인 Z. 1018 레오네(Leone)와 경쟁했다.[* Z. 1018은 ~~잘생긴~~ 쌍발 폭격기로 15대 생산되고 이탈리아의 항복으로 양산이 사실상 무산되었다.] SM. 84는 총 329대 생산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